'AI에 대체되지 않는 일을 찾아라' 같은 건 속 편한 대답이다
AI에 대체되지 않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대체되지 않는 '일'이 아니라 다른게 필요하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자리 관련 주장은 매번 달라진다.
GPT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애초에 이게 내 직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심심이의 상위 호환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림을 생성하는 모델이 나왔을 때에는 사람의 손가락을 잘 표현하지 못했고, 매번 손가락이 6개 달린 기괴한 그림을 만들곤 했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AI 그림의 손가락만 고치는 직업'이 나올 거라고 말했다.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사람의 도움은 필요할 거라는 내적인 작은 믿음(이라고 쓰고 희망 사항이라고 읽지만)은 있었기 때문이겠지.
몇 년이 지나고 AI가 확실히 발전한 이후에는 'AI를 잘 쓰려면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점차 확산되었다. 이건 (최소한 아직까지는) 사실이다. AI로 디자인하는 것도 디자이너가 잘 하고, AI로 프로그래밍하는 것도 개발자가 잘 한다. 관련 지식이 없으면 정교한 프롬프트를 작성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AI에게 잘 명령하는 능력'조차도 큰 장점이자 능력이 아니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아무런 기초지식 없이도 최소한의 보안은 갖춘 홈페이지를 만들어내고,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사실적인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어낸다. 굳이 UI를 잘 알지 못해도 이미 AI가 UI 라이브러리를 어딘가에서 알아서 가져와서 봐줄 만한 디자인을 뽑아내고, 버그 수정, 수정내역 정리, 각종 테스트까지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훌륭하게 해낸다.
여전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프로덕션 수준으로 만드려면 전문가(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비전공자가 만든 건 결국엔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 '대체된다 해도 신입만 대체된다'고 말한다. 물론 난 이게 사실이고 지금까지도 유효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규모가 큰 프로젝트로 갈 수록. 이 말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제발 내가 대체되지 않는다고 말해줘' 같은 처절한 외침의 농도가 점차 짙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웹사이트 하나 만들었다고 개발한다고 자만하지 마' 같은 뉘앙스가 좀 더 있었다면, 요즘은 '결국에는 사람이 필요할 거라고 전문가들이 그랬으니까 괜찮을거야' 같은 뉘앙스에 더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더 일을 잘하는 AI가 나와버렸다. 이미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은 오래전에 따라잡혔고, 이제 모든 분야에서 업계 최상위권 수준의 능력을 갖춰버린 것이다.

이제 '일을 잘해서' AI보다 가치있는 경우는 머지않아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그럼 어째야 할까. 미리 대비해서 서울역 지하철에 노숙 자리라도 하나 맡아두어야 하나? 물론 그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잘 만드는 능력'으로는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다. 더 많은 가치를 '가져'두어야 한다. 돈이든, 자산이든, 신뢰든, 인맥이든, 점유율이든, 팬덤이든.
AI시대에도 결국은 대체되지 않는 것이 있다. 사실, AI가 대체한 것은 애초에 생산성 뿐이다. 인지도, 신뢰도, 인기, 팬덤을 생성할 수 없다.
AI로 무료 메신저 앱을 만들어도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DM, 왓츠앱 등을 대체할 수 없다. AI로 동영상 플랫폼을 만들어도 유튜브를 절대 대체할 수 없으며, 중개 플랫폼을 만들어도 중고나라와 당근마켓을 대체하지 못한다. 여전히 사람들은 잘 쓰고 있던 기존의 것들을 이용하고, 거기에 추가로 아무도 쓰지 않는 쓰레기 앱 수십만 개가 새로 생길 뿐이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굳이 기존의 서비스들을 이용하며 생긴 데이터와 신뢰, 추억을 버리고 언제 서비스를 종료할지도 모르는 작은 회사의 서비스로 옮겨갈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럴 땐 결정이 필요하다. 아직 크게 인지도가 없어 강력한 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시장에서 먼저 점유율을 높이거나, 압도적인 1인자가 없는 시장에 같이 진입해 경쟁하는 것. 그 시장이 별로 크지 않더라도, 충분한 점유율을 얻을 수 있다면 문제없다. 애초에 처음부터 니치하지 않은 거대 시장에서는 0.0001%의 점유율도 만드는 게 쉽지 않으니까.
실천은 AI가 해주지 않는다. AI에게 시키면 그 업무는 대신 해줄진 모르겠으나 어쨌든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시켜야 한다. 자신의 일이나 과제를 대신 해 달라고 시키는 사람은 많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위해 AI에게 전략을 구상해달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AI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콜드 콜을 걸도록, 안 읽던 책을 읽도록, 하지 않던 공부를 하도록 만들지 못한다. 결국 판단과 결정, 그리고 실행은 인간의 몫이다.
만약 아직 경쟁자가 없는 신규 시장에 진입하고 싶다면 지금 진입해야 하고, 직접 진입해야 한다. 머뭇거리다간 같은 생각과 더 나은 실행력을 가진 사람이 대신 해버릴테니까.